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은 정말 행복하다
연말에 올해 찍은 사진들을 가족들 모두 모여 앉아서
함께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베스트 사진들은 모아서 앨범으로 제작해야 겠다.
사랑해 주안아, 예은아
사도 바울의 사역은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는 것이다.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을 증언하며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는 사실이다.
사역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사역자로서 준비해야 할 첫번째 우선순위이다. 언제 어디서든지 성경만 있으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부터 성경 통독과 함께 파노라마식 성경연구를 우선 시작해야겠다. 그 다움에는 권별로 귀납적인 연구를 하면 좋겠다. SBS 갈 때까지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요즘같은 때에 집중해서 연구하자.
베뢰아 사람들처럼 신사적인 남자가 되리라 (행 17:11)
내 닉네임이 "the man of the book" 이 될만큼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랫동안 함께 teamwork을 이루며 멋진 사역을 하던 팀도 갈라서는 수가 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했다. (행 15:35) 성공적인 사역을 한 것이다. 두 사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사실 바울이 여기까지 있게 된 것도 바나바의 인정과 세워짐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행 8:26-27)
그런데 "며칠 후에" 문제가 생겼다. (행 16:36)
그렇다. 환상적인 동역을 하던 이 두 사람에게 문제가 생기는 데 불과 며칠이 필요했을 뿐이다. 오랜 공존과 협력이 무너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며칠에 불과했다.
생각해보건데,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렇지 않나?
황혼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뉴스가 있었다. 20년 이상 살아온 부부들이 갈라서는 황혼 이혼률이 23년 사이에 4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2004년 기준으로 이혼한 부부 10쌍 가운데 2쌍 가가이가 홍혼 이혼을 했다.
관계를 build up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은 순간적이다. 마찬가지로 관계를 다시 restore 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여행 중간에 떠났던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는 문제를 놓고 갈라서게 되었다. 그렇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도 심히 다투고 관계가 끊어져 갈라설 수 있다.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행 15:38)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안에서 마지막 가능성은 남겨 놓는 것이다. 지금 떠나 보내는 사람일지라도 언젠가는 만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말년에 바나바의 생질 마가는 바울과 함께 감옥에 있다. (골 4:10)
빌레몬서 1:24에서 바울은 마가를 "나의 동역자"라고 부르고 있다.
마가는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딤후 4:11)
지금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떠난 사람이 있는가? 깨어진 관계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가?
금방 괜찮아질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생각보다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소망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마가와 같은 Great come-back 을 기대해 보라.
유대인들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할례는 꼭 필요하다라는 주장이 유대인들 사이에 있었다.
핵심을 놓치면 분쟁의 고리를 풀기 어렵다. 구원은 은혜로 받은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베드로는 지혜롭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 15:11)
이렇게 일단 핵심을 붙드니까 해결 방법이 보이기 시작한다.
야고보의 solution: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옳으니" (행 15:19-20)
불필요한 것으로 힘들게 하지 않고, 꼭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3가지만 없애도록 했다.
후에 이런 결정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유다와 실라가 이 편지를 전할 때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행 15:28)
요긴한 것들에 집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은혜- 복음의 핵심에 견고히 붙들여 살기 원한다.
수많은 일들 중에서 꼭 해야할 사명에 헌신할 때 귀한 열매들을 거둘수 있다.
오늘 아침 읽은 글을 링크해 둔다.
Haiku Productivity: The Fine Art of Limiting Yourself to the Essential
이메일은 5 sentences 미만으로,
RSS 블로그 포스트는 하루에 6개만 읽고,
일을 마쳤을 때는 7분간의 자유시간을 자기 자신에게 선물하고 (timer 를 맞추어 놓는다),
RSS feeds 는 10개로 제한한다.
내 NetNewsWire 에 등록되어 있는 블로그의 갯수를 세어보니 50개도 넘는다. 이번 주말까지 20개로 일단 압축하기로 했다. 정말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다 버리자.
버려야 정말 중요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된다.
순종하지 않은 마음, 즉 말씀을 듣고도 불순종할 때 어떤 일이 생기는가?
행 14:2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바로 선동하고, 악감을 품는 것이다.
성경에 순종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면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 12에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할 때, 민 16에서 고라, 다단, 아비람의 반역 때도 마찬가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럴 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계속 해서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다 (3절)
▧ 함께 나눌 기도제목
1. 우리 공동체의 리더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적권위를 인정하게 하소서
2. 영혼을 사랑함으로 중보기도의 삶이 멈추지 않게 하소서
▧ 본문해설 < 진정한 중보자된 지도자 모세 >
1. 영적권위에 도전장을 내다(1-9)
모세가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한 일로 인하여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도 선지자로 지도자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는 자인데 정서상 이해되기 힘든 결혼을 통해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모세의 태도는 온유함이었습니다. 자신을 비방하는 친족들 앞에서 온유함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들을 불러 모으시고 모세의 특별한 권위를 증거하셨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인간이 넘볼 수 없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입니다. 이를 비방한다는 것은 모세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대항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를 어떻게 행사하고 있습니까? 또한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을 향하여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까?
2. 중보자된 모세(10-16)
하나님이 떠나시자마자 비방한 미리암이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아론은 즉각 자신과 미리암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극악한 죄를 저지른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아론은 모세를 ‘내 주여’라 부르며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비방함으로 하나님께 징벌 받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께 중보기도하고 있는 모세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고 7일간의 회개의 기간과 정결케 되는 시간을 거친 뒤 미리암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의 범죄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으로의 행진은 잠시 멈추어야만 했습니다. 한 개인의 죄악이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게 하는 부분입니다. 오늘 하루도 중보자 되신 주를 생각함으로 온유함을 드러내며 살지 않으시겠습니까? 또한 공동체에 악영향을 미치는 죄를 범치 않으며 정결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시겠습니까?
안디옥에서 바울과 바나바가 점점 더 강력하게 말씀을 전하고 있었다.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 들었다 (44절) Washington DC 근처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고 생각해 보자. 엄청난 일이다. 그만한 인파가 몰려 드는 것을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정치가나 권력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꿈꿀 만한 상황이다.
항상 이럴 때면 등장하는 음모를 꾸미는 세력들이 있다.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항하여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바울이 전한 말씀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시기심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워 버린다. 판단력을 잃게 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동일한 일을 겪을 수 있다. 굳이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1. 부르심을 기억하라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전한 이 복음이 사실은 지금 자신들을 공격하는 유대인들에게 마땅히 먼저 전했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부하는 유대인들이기에 방향을 틀어 이방인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히 한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47절)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부르심을 기억하고 전진해라.
반대가 없다면 결코 위대한 일도 아니다. 반대가 있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견고하게 붙드면 이겨 낼 수 있다.
2. 떨어 버리라
반대 속에 머물러 있지 말고 계속 진행해야 한다.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의 반대 속에도 "주의 말씀이 그 자빙에 두루" 퍼지게 되었다. (49절) 결국 말씀이 승리했다는 말이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해서 그 지방에서 좇아 낸다.
바울과 바나바의 행동을 주의해서 보라.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을 가거늘" (51절)
반대했던 사람들에 대해 분노를 가슴속에 쌓아 두지 말라.
부르심에 대해 회의를 느끼며 좌절하지도 말라.
그곳을 떠나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음을 기억하라.
3. 기쁨과 성령이 충만함을 유지해라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기쁨과 성령 충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안디옥을 떠나 이고니온으로 향하는 이 두 제자들의 모습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52절)
멋지지 않은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이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핍박 앞에서도, 좇겨 나는 순간에도 이들의 기쁨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마 콧노래를 부르며 길을 가고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또한 성령 충만했다. 은혜가 가득 찬 얼굴을 떠 올려 보라.
정말이지 세상이 감당치 못할 사람들이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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